법정의국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홍어X 조회 40회 작성일 2021-04-15 17:53:11 댓글 0

본문

징역 1,000년? 속시원한 미국 판결 클라스.. 우리는 왜 12년? 우리나라 판결의 이유 |크랩

지난 2018년 미국 체육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습니다. 미국 체조팀 팀닥터가 여성 체조 선수 160명 이상을 성추행하고 성폭행했던 사건이죠. 이 사건 피의자 래리 나사르는 세 번의 재판을 거쳐 무려 360년형을 선고받습니다.

2013년에는 11년간 여성 3명을 감금하고 성폭행했던 아리엘 카스트로가 종신형과 함께 무려 1,000년형을 선고받습니다. 미국에선 살아서 다 채우지 못할 형량이 흔치 않게 선고되는데요. 아동 성폭행범에는 12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배포자에겐 1년 6개월 같이 형량이 약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시원하기까지 합니다.

최근 강력한 범죄에까지 약한 형량이 적용되자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100년, 200년의 강한 형량을 부과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범죄자 형량은 왜 미국처럼 세지 않을까요? 크랩이 정리해봤습니다.

구성 편집 유현우
디자인 김달
도움 오장훈 인턴

#크랩 #천조국 #판결

[ 변호인 ] 변호인 명장면 - 2 (Feat 국가란!)

저작권은 본 영화 제작사에 있습니다.

법정스님 생전 법문- 비워내는 삶. 법정스님의 좋은 글보다 법정스님의 법문을 직접 들어 보세요.

젊은 시절과 무소유 사상
1932년 11월 5일(음력 10월 8일)에 전라남도 해남군 우수영(문내면)에서 태어났다. 우수영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 6년제 였던 목포상업중학교에 진학했고, 이후 전남대 상대에 입학하여 3년을 수료, 중퇴하였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이던 1955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3월에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년 4월에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60년에는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였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하였다. 1972년에는 첫 에세이집 』영혼의 모음'을 출간하였다. 1973년 함석헌 선생이 주도했던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였고,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다, 1975년에는 인민혁명당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 그 해 10월 수행자의 본래자리로 돌아가고자, 당시 부도만 남아있던 송광사 자정암 터에 토굴을 지어 홀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철저한 자기 질서 속에 무소유 사상을 설파하고 텅 빈 충만의 시기를 보냈으며, 이 무렵인 1976년에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무소유'를 발간하였다. 〈무소유〉는 370만 권이 판매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이후 17년간 불일암에서의 생활을 이어갔으나, 그곳에서의 수많은 저서 집필로 인해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면서 사람의 발길이 잦아지게 되었다. 이에 법정은 1992년 4월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 정진하게 되었다.

1993년 7월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이유로 독립기념관과 창덕궁 부용정 연못의 연꽃이 모두 뽑혀졌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 어이없는 심정을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을 발표하며 다시 한 번 세속 일에 관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날로 각박해져만 가고 메말라만 가는 우리 심성을, 세상과 자연을 두루 맑고 향기롭게 가꾸면서 살아가자"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주창하게 된다.

1994년 3월 26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선포 기념행사로 서울 양재동 구룡사에서 '법정 스님과 함께 하는 실천 큰 모임, 출발 맑고 향기롭게' 대중 법문을 개최하였다. 맑고 향기롭게 모임은 범종교, 범종파 순수 시민운동으로 회원 각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후원하는데 힘입어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맑고 향기롭게 장학금'을 마련해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매년 학비를 지원하는 등의 운동을 펼쳤다. 이후 회원과 후원금의 규모가 증가하자 1996년 12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고, 법정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97년 12월 14일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개원법회에 한국 천주교 성직자인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자, 이에 대한 답례로 1998년 2월 24일에 명동 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져 종교 간의 화합을 보여 주었다.

말년과 입적
2003년 12월, 월간 〈맑고 향기롭게〉에 〈내 그림자에게〉라는 글을 통하여 길상사 회주(會主)와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직책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뒤에서 도울 것이라 약속하며 길상사에서 짝수 달마다 해오던 법회를 봄, 가을 두 차례만 할 뜻을 밝힌다. 그러나 주위의 거듭된 만류로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직 사임은 철회하였다.

이때쯤부터 '회주 스님', '큰 스님', '이사장 스님'이란 명칭을 일절 사용하지 못하고 '어른 스님'이란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통해 밝힌 입장과는 달리 동안거, 하안거 해제, 결제, 길상사 창건 기념일, 부처님 오신 날 등 길상사의 큰 행사에는 산에서 내려와 어른 스님으로서 책임을 다하였다.

2007년부터는 폐암이 발병해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2009년 겨울에는 강원도의 오두막에서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 요양했지만, 병세가 악화돼 서울 강남구의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였다.
2010년 3월 11일 오전 길상사로 옮겨졌고, 오후 1시 51분에 입적하였다. 법정 스님의 장례는 "많은 사람 수고만 끼치는 일체 장례의식 하지 말라"며 관이나 수의를 마련하지 않고 승복 입은 그대로 다비하라는 평소 뜻에 따라, 영결식 등 별도의 장례절차 없이 진행되었다. 3월 12일에는 스님이 수행했던 전남 순천시 송광사로 운구해 13일 오전 11시에 다비하였다.
법정은 '사후에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그의 저서들은 모두 절판, 품절 되었다. 그 후 그가 쓴 책들의 수요가 늘어 일부 책들은 가격이 10만 원 가까이 치솟을 만큼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저작권자가 절판 유언을 남겼더라도 출판권은 출판사에게 있기 때문에 더 출판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3월 22일, 법정의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그의 유언을 존중하여 모든 책을 절판하기로 합의하였다. 다만 이들 책을 미리 사재기한 사람들이 웃돈을 주고 파는 경우도 발견되어, 법정 스님의 뜻을 모욕한다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이와 같이 혼란이 벌어지자, 법정의 저서에 대한 저작권을 양도받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출판사 측은 2010년 말까지만 그의 저서를 판매하기로 결정하였다. 일정 기간 그의 저서를 판매토록 한 후에는 모두 수거하여 완전히 절판했다. 이로 인해 출판가의 혼란은 다소 진정되었다. 2018년 이후로는 일부 서적과 미발표 원고 등이 일부 판매되고 있다.

... 

#법정의국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713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Copyright © www.ifre.or.kr.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help@oxmail.xyz